과거 고고학계에는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던
모비우스 학설이라는 것이 있었어
이 이론은
전기 구석기 문화가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의 존재 여부에 따라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으로 양분된다는 내용이야
가장 원시적인 뗀석기이자
단순한 짱돌에 가까운 찍개보다는
가공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더 발달한 문화이기 때문에
서양인의 인종적인 우월성이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된거라는 서구우월주의의
뒷받침이 되어주는 학설이었지
그런데 1978년 한국에서 그 학설을 박살내며
전세계 구석기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 일어났어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그렉 보웬이라는 하사관이
여자친구와 한탄강으로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가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해낸 거야!
심지어 이 그렉 보웬은 입대 전 고고학을 전공했던 사람이였지.
위의 연천 전곡리 유적을 통해
모비우스 학설은 반박당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전세계 고고학계는 완전히 뒤집어지게 되었어.
그리고 이로 인해
뒤집어진 또 다른 나라가 있었는데…
바로 일본!
사실 한반도에서는 이미
일제강점기 시절에
후기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어.
하지만 그 당시 일본에는
구석기 유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일본은 한반도에서 나온 해당 유물이
구석기 유물임을 부정했지.
그런데 보란 듯이 연천 전곡리에서
전기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거야
이로 인해 그동안 일본의 역사가 한국과 중국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던 열등감이 대폭발해버리게 되는데 ..
그런데 바로 그때 후지무라 신이치라는 사람이
혜성처럼 등장했어.
이 사람은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한
무려 <비전문가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는데
놀랍게도 일본에서 4만 년 전의 구석기 유물을 찾아버렸어.
일본의 구석기 유물은 그 전까지 3만 년 전까지가 한계였기 때문에,
이 발견으로 인해 후지무라 신이치는 급속하게 주목받고 유명해졌지.
이를 시작으로
이 사람이 가는 곳, 손이 닿는 곳 마다
선사시대 유물이 연달아 발굴되었고,
결국에는 70만 년 전의 구석기 유물까지 찾아냄 ㅋㅋㅋ
이로써 그는 교과서에도 등장하며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신의 손’으로 불리게 되었어.
그러던 중에 마이니치라는 신문사에
어떤 제보가 하나 들어오는데
그 제보를 시작으로 이 신문사는
후지무라 신이치의 계속되는 엄청난 행보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고, 결국에는
후지무라가 준비한 가짜 유물을
유적지로 보일법한 장소에 묻어두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포착해냈어
그동안 찾아낸 유물 발굴이
모두 조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어.
(20년만에 밝혀짐)
이를 시작으로 정밀조사 결과
후지무라 신이치가 20여년간 발굴한 180곳의 유적지 중
162곳에서 조작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가짜로 판명된 유물들은
문화재 지정 취소, 교과서 폐기,
관련 출판 도서 전량 환수 등등
그야말로 사회 전체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게 됐어.
해당 유적이 발굴되었던
유적지를 가지고 있던 시의 경우
날조사건의 재조사에 투입된 비용이
1억 3천만원 정도였다고 해
(2000년대 초반 당시)
마찬가지로 후지무라가 발굴한 구석기 시대 유물을
지역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던 지자체들의 개발비용도
모두 휴지조각이 되어 날아갔지.
이 조작 사건이 불러일으킨 영향으로
일본의 고고학계 신뢰도는 최하점에 이르렀어.
국제 고고학 회의에서는 일본 학자들의 참가가 거부되기도 했고,
그 후에는 일본에서 구석기 유물로 추정되는 석기가 나왔지만,
일본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져서
손쉽게 인정받지 못하고 논란이 계속되었어.
한편으로는 구석기 유적 연대측정을 위해
국제적으로 관계가 좋지 않은 한국 학자들을 일본으로 초빙해
검증을 받아 신뢰를 얻으려는 쓸쓸한 상황이 벌어졌어.
이 사건은 국제적인 곤경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일본인의 우수함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의 강한 의지와
그 아래에 감춰져 있던 열등감이 가장 잘 드러났던 사건으로 생각돼.